# 본 게시물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담고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한번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뇌과학자 고세원은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으로 고통받고 있다. 타인의 뇌와 뇌파를 동기화해 기억을 공유하는 기술을 연구하던 세원은, 죽은 자들의 뇌에 접속해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의 단서를 쫓기 시작한다.”
만화가 홍작가의 동명 원작을 영상화한 애플TV+의 첫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닥터 브레인>은 그동안의 김지운 감독의 관심사와 일맥상통했다.
사실 김지운 감독은 그동안 일순간의 기억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사람들과, 도망치고 싶은 기억을 지우지 못해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기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왔다. 잊히지 않는 기억 때문에 복수귀가 되어 만주까지 달려온 창이(이병헌)와 자신이 지워버린 기억 때문에 싸움에 휘말린 태구(송강호)의 서사가 끝을 장식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보스의 어린 애인이 첼로를 연주하다 말고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순간의 기억에 사로잡혀 모든 걸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선우(이병헌)의 삶을 그린 <달콤한 인생> 처럼 김지운의 작품 세계는 ‘기억’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라앉다가 끝내 파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타인의 뇌를 스캔한다
주인공인 고세원은 뇌과학자로 뇌파를 이용하여 타인의 뇌를 스캔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뇌 스캔을 받는 대상이 사망하면 일정 시간 동안 뇌 스캔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었고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동료의 도움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가격을 받아 살해당한 한 남자의 뇌를 가장 먼저 스캔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민간 수사 조사원이라고 하는 이가 찾아와서 '김준기'를 알고 있는지 물었고, 경찰은 아내와 '김준기'가 내연 관계에 있었으며 그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버린 '고세원'은 '김준기'의 뇌도 스캔하기로 했고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뇌 스캔을 한 이후 환각에 시달리던 그는 누군가의 기억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혼란에 빠진 세원은 코마 상태인 아내가 자살시도를 하기 전에 아들이 살아있다고 주장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는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뇌스캔을 이어가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어디서 부터 잘 못된 걸까
결국 이 모든 일의 시작은 고세원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같은 헛된 꿈을 꾸고 있었던 명태석 박사가 아들을 납치, 그리고 그동안의 모든 일들을 벌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세원은 명태석 박사를 아들의 머릿속에서 쫓아내었고, 모든 일은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명태석 박사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는 고세원의 뇌가 그에게 잠식되어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뇌를 스캔한다는 소재는 정말 신선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의 마음이 궁금하고 또한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무너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캔에 성공한 이는 주인공처럼 여러 생각에 잠식당하여 살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apple tv에서 나온 첫 한국 작품이고 감독 또한 굵직한 걸작들이 많기에 기대를 하고 보았다. 전반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도 많았다. 코마 상태에 빠진 부인의 뇌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찾기 어려워지자 부인이 직접 스스로 사망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설정은 당황스러웠고, 그동안 죽은 이의 뇌를 스캔하는 조건에서 벗어나 개연성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한 고양이의 뇌를 스캔하는 부분도 크게 몰입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에 소멸된 줄 알았던 명태성 박사가 등장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는데 그것이 꼭 다음 시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의 뇌를 스캔 한 대가로 고세원 본인의 정신은 약해졌고 그 자리를 명태석 박사가 점점 차지하고 있는 '임과 응보'의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이시네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빙(moving)③ - 괴물인가 히어로인가 기준을 정하는건 누구일까 (0) | 2023.09.12 |
---|---|
무빙(moving)② - 특별했던 그 시절 남산돈까스 배달부 (0) | 2023.09.12 |
무빙(moving)① -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0) | 2023.09.11 |
웬즈데이(Wednesday) 팀 버튼의 해리포터 느낌 (0) | 2023.01.10 |
더 글로리(The Glory) 용서는 없어 그래서 영광도 없겠지만 (0) | 2023.01.09 |
댓글